2007년 8월 29일

[갈무리] 고객 옹호 마케팅

Push, Pull, CRM, 그 다음은?
마케팅은 새로운 개념이나 용어가 유난히 빈번하게 출현하는 분야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만큼이나 다양한 기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며 또 유행처럼 사라져 간다. 기존의 푸시(push)형 마케팅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등장한 풀(pull) 마케팅, 더 나아가 고객과의 관계 강화를 강조하는 고객관계관리(CRM)까지... 지난 수십 년간의 마케팅 트렌드는 생산자 중심주의에서 고객-시장 중심주의로 일관되게 이행해 왔다. 그렇다면 그 다음 대두될 마케팅 화두는 과연 무엇인가?

본서는 ‘고객 옹호(advocate)’야 말로 날로 강력해지는 고객에 대응하는 새로운 마케팅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한다. '고객을 옹호하라' 과연 무슨 뜻일까? 처음에는 CRM과 비슷한 개념이 아닌가 의아해 하기도 했으나, 책을 읽어 나감에 따라 그 차이는 분명히 드러났다. 한 마디로 고객 옹호 마케팅은 TQM과 고객 만족(CS), 고객 관계를 바탕으로 한 CRM보다 한층 더 진화한 신뢰 마케팅 개념이다.

코뿔소가 아프리카 초원에서 어린 소녀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소녀 바로 앞에서 멈춰 서자 소녀가 코뿔소의 뺨을 어루만지는 세인트 폴(Saint Paul) 보험회사 광고는 ‘고객 옹호’라는 생소한 개념을 잘 설명해 준다. 위기(구매의사결정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적절한 해결방식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에 처한 고객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것이 기업의 임무라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고객에게 자사 제품과 경쟁사의 제품에 대해 공개적이고 정직한 정보와 조언을 제공할 것과 고객의 이익을 최대화하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을 기업에 주문한다.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eBay)는 신뢰를 통해 서비스업계의 강자가 된 가장 좋은 예이다. 이베이 성공의 열쇠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서로를 신뢰하도록 돕는 매커니즘에 있다. 이베이는 신뢰를 바탕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구매자는 판매자에 대해, 판매자는 구매자에 대해 긍정적, 중립적, 부정적 등급을 매기게 되고, 모든 판매자의 평판에 대한 정보는 경매물건 옆에 명시된다. 그 결과 평판이 좋은 판매자의 상품은 동질의 다른 상품에 비해 7.6퍼센트나 높은 가격에 낙찰되기도 한다. 정보 투명성에 기반한 신뢰 마케팅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지진해일과도 같은 고객의 변화
본서 ‘고객 옹호 마케팅’은 총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4장에 걸쳐 저자는 지난 5년에 걸쳐 모든 산업에서 고객의 힘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추세임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00년까지의 50년간은 이른바 푸시 마케팅의 시대였다. 기업이 정보력을 가졌고 상품을 고객에게 ‘떠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은 반전되고 있다. 2004년 한 연구에 따르면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의 비율은 1986년의 51퍼센트에서 79퍼센트로 늘어났고, 볼륨을 줄이는 비율은 1986년의 25퍼센트에서 53퍼센트로 증가했다고 한다. 심지어 21세 이하의 일부 청소년들은 TV를 전혀 보지 않고 인터넷의 경우 역시 배너 광고나 팝업 광고를 클릭하는 비율 또한 크게 하락하고 있다. 더 이상 푸시 마케팅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대 인터넷을 비롯한 컴퓨터 기술의 발달은 고객의 힘을 강화시켰다. 역사상 유래 없이 기업 및 상품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오늘날의 고객은 이제 여러 수단을 통해 기업의 광고를 확인하고 좋은 상품을 고를 수 있는 정보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저자가 지진해일에 비유하듯이 이제 산업을 흔들어 놓을 만큼 무서운 기세로 기업을 덮치고 있다. 그 결과 일방적인 광고나 판촉은 신뢰 기반 마케팅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특히 자동차나 건강의료, 여행 서비스 등 제품 차별화가 심하거나 복잡한 제품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TD 워터하우스(Waterhouse) 같은 증권사는 ‘고객 여러분이 주도합니다’라는 마케팅 메시지를 통해 고객의 힘을 인정한다. 아메리트레이드는 고객 주문의 ‘5초 이내’ 처리를 보장하기도 한다. P&G의 기저귀 브랜드 팸퍼스(Pampers) 사이트는 젊은 엄마와 예비엄마들의 온라인 모임을 조직하고 임신 및 육아정보를 제공한다. GE 플라스틱의 웹사이트는 기술전담직원이 없는 중소기업 고객사를 위해 단순히 기업관련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공학 계산기’ 기능을 통해 자재선택 안내를 비롯해 플라스틱 제품의 강도와 피로도, 비용을 계산하는 것까지도 도와준다. 이처럼 고객옹호 마케팅은 부동산이나 증권, 보험, 내구재 및 산업재, 인력 서비스 등 전 산업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나던 고객권한 강화 현상이 이제 전 세계적 현상으로 번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P이론에서 A이론으로 패더라임이 변한다
과연 이런 변화 앞에서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예전의 마케팅 전략대로 판촉을 내세워 더욱 세차게 밀어붙일 것인가, 아니면 광고를 통해 고객을 유인할 것인가? 본서의 5장에서 저자는 ‘고객 옹호 이론’이라는 마케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맥그레거(McGregor)의 조직론에서 창의적, 자율적 종업원관을 강조하는 Y이론이 권위와 통제를 강조하는 X이론을 대체했듯이 마케팅에서도 푸시/풀 마케팅에 의존하는 P이론에서 신뢰와 옹호의 A(advocate)이론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A이론의 출발점은 고객을 지적 수준이 낮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대신 능동적 의사 결정자이면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가진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저자는 나아가 고객 옹호 마케팅은 고객 옹호 경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마케팅 정보는 다른 부서들로 연결되어야 한다. 기술부서는 고객의 편익을 향상시키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부서는 동일한 비용으로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인력 부서는 A이론을 수용하는 인력을 채용하고 훈련하며, 재무부서는 장기적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관점에서 고객의 신뢰와 충성심을 통제 변수로 채택해야 한다. 유통 채널들은 제조업자의 고객 옹호 프로그램을 지지하며, 고객 서비스 부서는 약속한 편익을 차질 없이 제공해야 한다. 요컨대 A이론은 단순한 마케팅 개념이 아니라 기업의 주요한 철학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고객을 옹호할 것인가
그렇다면 모든 기업이 모두 궁극의 고객옹호 기업이 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어지는 6~8장에서 저자는 모든 기업은 자사가 P에서 A에 이르는 신뢰 스펙트럼의 어디에 위치하는지 파악한 다음 바람직한 수준을 설정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하여 점진적으로 이상 수준까지 신뢰를 증가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려면 투명성 및 제품품질 향상을 넘어, 고객과의 긍정적인 관계 이상을 구축해야 하며 고객 옹호야말로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고객 옹호 피라미드’를 구축해야만 고객 옹호 마케팅을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TQM과 고객만족의 기반 위에 관계 마케팅을 통해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고객 옹호의 기반을 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신뢰구축 프로그램의 몇 가지 성공사례를 살펴보자. GM은 이른바 ‘꿈의 CRM'을 창안하여 시험적으로 운용했다. 그들은 기존의 푸시/풀 방식의 CRM을 고객 옹호 도구로 바꿔 모든 자동차에 대해 공정하게 조언하고, 자사 및 경쟁사 차량의 시험주행 자료를 제시하는 한편, 고객별 취향을 고려해 맞춤형 제품 정보를 제공했다. 그 결과 ’꿈의 CRM‘을 체험한 고객들이 GM 차종을 선택하는 비율이 대폭 증가했다. 나아가 GM은 ‘자동차 선택 가상 상담원’을 도입하고 고객들 간의 대화를 분석해 수억 달러에 달하는 매출 잠재력을 지닌 신차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인텔(Intel) 역시 고객 옹호의 선도 기업이다. 인텔은 매달 300만 명이 방문하는 고객지원 사이트 인텔 닷컴을 통해 신뢰구축에 나섰는데, 이 사이트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받는 부문에서 고객신뢰를 증가시키기로 결정했다. 인텔은 5차례의 테스트를 통해 고객 지원용 다운로드 사이트를 개선했는데, 고객이 웹사이트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논리 마법사(Logic wizard)와 가상 조언자를 추가했다. 그 결과 다운로드 성공률이 33퍼센트 증가하고, 고객이 콜센터 직원의 도움 없이 인터넷에서 직접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해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절감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밖에 고객 옹호 마케팅의 성공사례는 더 있다. 트래블라서티 닷컴(Travelocity.com)이나 익스피디어 닷컴(Expedia.com), 아비츠 닷컴(Arbitz.com)과 같은 여행사 웹사이트나 아마존, 쇼핑 닷컴(Shopping.com), 시네트 닷컴(Cnet.com)과 같은 소매업자들 역시 고객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정직한 제품비교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호응을 얻고 있다.

유행인가 대세인가
물론 저자 역시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가 다소 급진적인 것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인지 ‘고객 옹호 마케팅에 관한 질의 및 응답’이라는 한 장(9장)을 할애해 고객 옹호 마케팅에 회의적인 여러 사람들의 질문을 인용하고 이에 답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의문은 고객옹호 마케팅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요약하자면 고객옹호 마케팅은 단기적으로 비용을 증가시키지만 장기적으로 매출, 고객충성도, 시장점유율, 이익률이 증대하며 고객획득 비용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사 제품에 대한 솔직한 정보 제공으로 인해 일부 고객을 잃을 수도 있으나 고객의 의사결정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소비자 의견 수렴을 통해 지속적으로 고객 욕구를 파악함으로써 경쟁열위로부터 탈피하는 기회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아무리 고객을 옹호해도 고객은 결국 최저가격을 추구한다는 지적에 대해 대체로 고객은 낮은 가격을 추구하지만 그 중에는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도 존재하며, 일단 이들이 기업을 신뢰하기 시작하면 기업이 제시하는 가치제안을 믿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아가 고객 옹호 마케팅 과정에서 고객으로부터 획득한 혁신기회는 가격전쟁으로부터 벗어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고객 옹호 마케팅이 적용 가능한 분야가 한정적이라는 점에 대해 저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신뢰라는 요소는 거의 전 산업에 내제된 것으로 복잡한 제품에서부터 설탕, 과일 같은 단순한 상품, 심지어 비영리조직 및 정부에까지 고객 옹호 마케팅이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직문화의 변화가 필수
‘고객옹호는 시대적 요청이며 미래 생존의 필수 요건이다.’ 끝으로 저자는 단언한다. 고객 옹호 마케팅의 선도기업들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므로 후발주자들도 살아남으려면 고객 옹호마케팅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푸시/풀형 마케팅에 익숙한 상당수 기업이 하루 아침에 고객옹호 마케팅 패러다임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저자는 10장에서 조직문화의 변화를 주문한다. 고객과 공감할 수 있는 비전과 용기, 열정을 가진 경영자들 채용하여 신뢰 및 옹호의 수준을 측정하고 이들 척도와 양립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고위 경영자 아래 고객 옹호팀을 조직하고, 재무와 생산 및 엔지니어링, 인력 부서를 포괄하는 모든 기능부서 간에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블루오션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늘날 많은 산업에서 경쟁이 격화되고 수익성이 낮아짐에 따라 이른바 경쟁이 없는 ‘블루 오션’을 찾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모두가 새롭고 거대하며 획기적인 ‘그 무엇’을 찾고 있지만 실상 그 성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사실 블루오션의 관점에서 보면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고객 옹호 마케팅’은 당연하면서도 실행하기 쉬워 보이는, 또 마케팅에 국한된 접근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방식이 반드시 파격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격언이 있듯이 가장 쉬워 보이는 것이 가장 이루기 어려운 것일 수 있으며, 또한 현재의 난관을 돌파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고객 옹호를 통한 신뢰관계를 강조하는 ‘고객 옹호 마케팅’은 기대만큼 획기적이지는 않으나 명심해 둘 만한 원칙을 담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인 글렌 어반(Glen Urban)은 MIT 경영대학원 마케팅 교수이자 익스페리언 시스템 사의 공동 창업자이다. 학계에서 쌓은 탄탄한 이론적 기초 위에 실무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녹여 낸 본서는 흔히 마케팅 서적들이 빠지기 쉬운 '지당하지만 현실성 없는' 또는 '사례는 풍부하나 논리성이 결여되는' 문제점을 요령 있게 피해가고 있다. 마케팅의 미래나 CRM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 고객 지향적 기업으로의 변신을 꿈꾸는 경영자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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